오늘은 3월달 쯤 우리 병원으로 오신 환자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50대 초반의 남자분입니다. 당뇨병을 앓은 지 20년이 되었고, 4~5년 전부터 단백뇨가 생기더니 신장기능이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우리 병원에 오셨을 때 혈액투석을 시작한 지 3주가 지난 후였습니다. 전신에 부종과 빈혈이 심하고 기력이 매우 약한 상태였지요. 당뇨병에 의한 망막증으로 치료 받은 경력도 있고요. 소변 양은 하루에 약 1리터로 좋았습니다.
환자분과 그간의 병력을 이야기하다가, 제가 직업을 물었습니다. 환자의 직업은 투석스케쥴을 정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투석과 일상생활을 균형있게 유지하기 위해서 중요한 고려 사항이거든요. 이 분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민망해하시면서 "저 가정의학과 전문의입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본인은 의사가 몸상태를 이 지경까지 방치했다는 부끄러움이 있었던 거죠.
말기 신장병에 도달해서 투석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환자들이 느끼는 정신적인 충격은 암을 진단받았을 때와 같은 정도로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말기 신부전증이고 투석에 의존해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큰 충격이지요. 이 때 대부분의 환자가 "내가 그럴리가 없어.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강한 부정을 합니다. 의사들은 더 하죠. 환자를 진료할 때는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만 그게 바로 본인일 때는 "내가 그럴리 없다. 나는 다르다" 그런 더 강한 부정을 하게 됩니다. 더구나 오늘의 주인공은 당뇨병에 의한 신장병증이 있고 단백뇨가 하루에 10그램 이상씩 나오면서 몸이 심하게 부었습니다. 부종이 심해지니까, 신장기능이 아직 꽤 남은 상태에서도 심장과 폐가 부으면서 호흡곤란 등 신부전증의 증상이 더 빠르게 나왔던 거예요.
여러분들이 상식적으로 Cr농도가 10 근처에 가면 투석을 시작한다고 알고 계실텐데, 이 환자는 Cr 5정도에서도 투석을 고려해야 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죠. 담당의사도, 환자 본인도 Cr을 보면 아직은 투석할 때가 아니고, 증상은 투석이 필요하고 하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낸 것 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2년 여가 지나면서 체력이 안 돼서 직장도 그만두고 처음에는 잘해볼 줄 알았는데 점점 나빠지고, 실망이 커지고 등등. 결국 더 이상버티지 못하고 투석을 시작했습니다. 2년 간 투석을 미루기 위해서 단백질 섭취를 최소로 줄이고 싱겁게 먹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밥맛이 없었고 부종은 더 심해지고 근육이 줄기 시작했지요. 할 수 없이 투석을 결정할 무렵에는 근육이 많이 줄었고, 양쪽 팔에 혈관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상태가 나빠서, 목에 있는 정맥에 관을 삽입하고 투석을 시작했어요. 여전히 부종이 있었고 팔과 다리의 근육이 매우 약하고 혈관도 찾아 보기 어려웠습니다. 나에게 치료받으러 온 무렵에는 투석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온 몸으로 느끼는 순응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분을 만나서 제가 가장 먼저한 일은 용기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투석을 시작하기는 힘들지만 투석을 제대로 하면 건강을 되찾고 직업도 다시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일이었지요. 그 다음은 식사에서 단백질 섭취를 많이 하도록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단백뇨에 의한 단백질 소실이 큰 상태에서 투석을 미루기 위한 저단백식사를 하면 단백질 영양실조가 발생합니다. 단백질 영양실조는 심혈관계 질환을 악화시키고, 면역기능을 저해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단백질 영양실조를 치료하려면 잘 먹고, 특히 단백질 섭취(계란, 고기, 생선, 두부 등)를 늘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다행히도 환자는 식욕을 되찾았고 식사량이 늘었습니다. 물론 매끼 고기와 계란을 먹고 있고요.
이젠 부종이 사라졌고, 팔에 혈관도 나와서 바로 내일 혈관 수술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 분을 볼 때마다, 본인이 의사가 아니었다면, 담당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2년 전에 투석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랬다면 1-2주 정도만 휴직하고 곧 직장에 복귀했을텐데, 지난 2년간 오랫동안 힘들었던 건강상 문제도 훨씬 적었을 텐데 이런 생각도 합니다. 투석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너무 겁내고 지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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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휴일 및 명절 정상 진료, 일요일 휴진
30년 경력 신장내과 전문의